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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용인술과 북한 엘리트의 동요

작성자: nkorea

조회: 14285 등록일: 2017-03-22

김정은의 용인술과 북한 엘리트의 동요  문순보 (자유민주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  통치의 기본은 용인술이다. 흔히 용인술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가려 씀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을 말한다. 독재자들의 용인술 가운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배신에 대한 극도의 경계다. 특히 북한의 독재자들은 저항세력의 조직화를 막고 충성심을 강제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특수한 용인술을 고안해냈다. 이 글에서는 김정은식 용인술의 특징과 북한 엘리트들의 대응을 살펴보고 김정은식 통치의 미래를 전망해보도록 하겠다.     ‘제 살 파먹기’식 간부 길들이기 폭력에 의한 공포정치는 북한 독재자들의 정권안보를 공고화하는데 결정적인 기능을 발휘해왔다.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 유지하기 위해 북한 지도자들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한 공포통치를 동원하여 간부들의 긴장이 이완되는 것을 방지하고 원심력을 차단하면서 충성심을 강제했다. 김정은의 북한 통치 5년은 이전시기와 비교해볼 때 연속성과 차별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연속성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시대에도 노정됐던 독재통치를 ‘김정은식’으로 강화하고 있다는데 그 차별성이 존재한다. 북한에서 공포통치의 원형(prototype)은 김일성시대에 나타났다. 김일성은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1967년 갑산파 숙청을 통해 반대파와 경쟁그룹을 일소하고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했다. 그후 북한에선 일인지배체제를 신격화하기 위한 우상화 작업이 이뤄졌고, 2대 수령인 김정일 대에 와서는 간부들에 대한 ‘세련된’ 용인술이 등장했다. 김정일시대에 나타났던 간부들에 대한 용인술은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것이었다. 사람은 보통 열번 가혹하게 대하다 한번 잘해주면 그 한번에 감동하게 된다. 김정일은 이 같은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간부들을 대했고, 결코 2인자를 용인하지 않으며 간부들끼리 ‘견제와 균형’을 통해 충성심 경쟁에 나서게 만드는 방법으로 집권층을 관리해 갔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용인술은 권력 강화를 위한 일인지배체제 확립에 효과적으로 기능한 측면이 많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김정은의 용인술은 스스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키며 제 살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김정은식 용인술은 얼핏 보아 김일성과 김정은의 그것을 절충한 듯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 용인술의 특징은 무자비성에 있다. 김정일의 그것처럼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간부들의 절대 복종을 유도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간부들에 대한 김정은의 용인술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숙청과 처형이다. 김정은 숙청의 칼날은 집권 첫해부터 춤추기 시작했다. 2012년 7월 당시 총참모장이던 리영호의 숙청을 필두로 하여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친고모부인 장성택 마저 고사포로 처형한 뒤 화염방사기로 흔적조차 없애버렸다. 2015년 4월에는 인민무력부장이던 현영철을 장성택 처형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처형했고, 지난해 7월에는 교육부총리였던 김용진을 공개 처형하고 전 농업상 황 민을 대공포로 살해했다. 특히 2015년 3월 간첩 혐의로 체포된 전 은하수 관현악단 총감독의 경우, 김정은이 직접 “이 땅에 묻힐 자리도 없이 없애치우라. 짐승처럼 죽이라”고 지시해 잔인하게 처형했다. 김정은 집권기 처형 또는 숙청된 간부들은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2015년 60여명으로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집권 3년차(2014년)에 들어서면서 잠재적 도전세력들을 대대적으로 청산해 현재까지 140여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3월 3일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16 국가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4월에만 북한에선 고위층 숙청을 위한 처형이 15건이나 이뤄졌다. 이 같은 잔인한 처형과 숙청을 통해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극도의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처벌의 위협을 통해 상시적 긴장을 불어넣고 충성심을 강화하도록 의도하고 있다. 둘째, 잔인한 처형과 숙청 외에 김정은은 간부들의 계급이나 직책의 강등, 복권의 반복을 통해 간부 길들이기의 양상도 자주 보여줬다. 가장 많은 굴곡을 보여준 인물은 최룡해다.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 초기 총정치국장 자리에 오르며 2인자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2014년 5월 황병서에게 밀려났고, 2015년 11월에는 숙청돼서 혁명화 조치를 받고 지방 농장으로 3개월 동안 좌천당했다가 복귀한 바 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또한 지난해 7월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조치를 겪었다. 전 총참모장 리영길은 지난해 2월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5월 7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 복권됐으나 계급은 상장(별 3개)으로 강등되고 직책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으로 강등됐다. 셋째, 빨치산세력에 대한 숙청이다. 김정은은 과거 김일성의 갑산파 숙청 등 비정한 권력투쟁의 모습까지 ‘김일성 따라하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북한 영국공사의 증언에 따르면, 군이나 보위성 등 북한의 중요 권력기관에 빨치산세대가 없는데 그 이유는 김정은이 빨치산 세력들을 권력 내부에서 축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빨치산의 상징격인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3형제가 2015년 이후 모두 해임됐다는 보도도 있었고, 빨치산 숙청 바람이 일면서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동료였던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이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에게 뛰어와 경례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처럼 고위급 간부를 대상으로 김정은정권이 공포통치를 서슴지 않고 펼치는 것은 간부들을 장악해서 철저한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아무리 고위급이라 하더라도 내 앞에선 일개 신하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체 간부들에게 주입시킴으로써 자신만이 위대한 지도자며 신적인 존재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실례로 북한에서 2인자 위상을 지니고 있는 총정치국장 황병서조차도 자신의 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세로 꿇어앉아 왼손으론 입을 가리며 김정은에게 공손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의도와 결과가 항상 같을 순 없다. 북한 엘리트들은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처세술을 익혀가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체제의 근간이었던 권력층의 결집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생존을 위한 면종복배(面從腹背)로 바뀌고 ‘같은 배를 탔다’는 운명공동체 의식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 같은 엘리트들의 동요 움직임은 의미 있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체제이탈이냐, 적극적 저항이냐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였던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정당성이 없는 정부가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강요한다면 그런 정부에 대해 충성을 거부하고 저항할 권리를 주장했다. 최근 북한 엘리트들의 생존을 위한 처세술은 체제이탈로 나타나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저항의 방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중국 저장성 류경식당 종업원 열세명의 집단탈북을 시작으로 북한 엘리트나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 혹은 고급두뇌 인력들의 연쇄탈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김정은 공포통치에 대한 엘리트집단의 불안감과 동요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동시에 북한체제에 대한 그들의 절망과 좌절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7월 27∼28일 홍콩에서는 하루 간격으로 북한의 수학영재 리정열군과 북한군 고위직 인사가 홍콩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들어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고,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던 김철성 3등 서기관이 잠적했다가 가족과 함께 한국에 귀순하기도 했다. 2015년말에는 유럽의 한 국가에서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소속 A씨가 우리 돈으로 수십억원을 들고 자녀와 함께 잠적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태국, 아프리카, 동유럽 등지의 북한 외교관 출신 고위급 인사들의 망명도 줄을 잇고 있다.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지난해 7월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이었다. 태 전 공사는 최근 망명한 탈북인사들 가운데 가장 고위급 인사다. 이후 북한당국에선 해외주재인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으나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 선양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에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해외파견과 물품구매사업을 맡고 있던 최고위급 인사가 가족 2명을 동반한 채 공작금 13만 달러를 가지고 탈북하여 한국 또는 제3국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 엘리트사회에는 분명히 커다란 동요가 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김정은식 용인술이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뜻한다. 북한 엘리트들은 김정은의 공포통치에 순종하며 수령에게 절대복종하고 수령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체제이탈을 선택하고 있다. 이들의 탈북 동기에는 생존에의 의지뿐 아니라, 태 전 공사의 증언처럼 북한체제에 대한 절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도 포함된다. 지난 5년간의 비극이 북한 엘리트들에게 확실한 학습효과를 안겨주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북한 엘리트들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방식인 체제이탈로 나타나고 있지만, 김정은의 용인술이 결국 자신들을 도구적 존재로만 이용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쳐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집단의식 수준으로 발전할 때 그들은 보다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비정함과 잔인함 일변도의 용인술이 김정은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은 월간 북한 2017년 4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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